
50년을 한자리에서 — 동대문 호남집 생선구이 이야기
The Story of Honamjip: 50 Years of Grilled Fish in Dongdaemun
서울 동대문시장 한복판, 닭한마리 골목 바로 옆에 자리한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코를 자극하는 것이 있다. 연탄불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생선 냄새다. 골목 전체가 뿌연 연기로 자욱하게 물들고, 그 연기 사이로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켜온 간판 하나가 보인다. 바로 호남집이다.
📖 호남집의 역사 — 1974년부터 지금까지
호남집은 1974년에 문을 열었으며,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꼽힌다. 개업 때부터 사용해온 연탄 화로에 각종 생선을 구워주는 것이 이 집만의 전통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울은 끊임없이 변해왔다.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새로운 맛집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호남집은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같은 자리, 같은 방식으로 생선을 구워왔다. 동대문시장이 전국 상인들의 집결지였던 시절부터, 지금의 K-패션 성지가 되기까지 — 이 집의 연탄불은 단 하루도 꺼진 적이 없다.
동대문시장은 단순한 재래시장이 아니다. 조선 후기에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해방 이후에는 전국 유통을 책임지는 중심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원단, 의류, 잡화 등 전문 시장이 연이어 생기면서 전국 상인들이 이곳으로 모였고, 그들의 하루를 책임진 것이 바로 시장 골목의 밥집들이었다.
호남집은 그 역사의 한 축을 묵묵히 지탱해온 식당이다.
🔥 연탄불이라는 철학 — 변하지 않는 조리 방식
호남집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세월이 아니다. 바로 조리 방식이다.
호남집 입구에서는 연탄불로 생선을 굽기 때문에 바깥에는 연기와 냄새가 퍼지지만 실내는 쾌적하다. 연탄에 직화로 구운 생선은 기름기 없이 구워져 비린내도 없다. 요즘 대부분의 식당은 가스 불이나 전기 그릴을 쓴다.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남집은 반세기가 넘도록 연탄 화로를 고집한다. 그 이유는 맛에 있다. 연탄 직화로 구우면 생선 표면이 골고루 익으면서 여분의 기름이 아래로 빠져나간다. 가스불로는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고소한 불향이 생선살 안에 배어드는 것이다.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게 익힌 생선은 밥과 함께 먹기 제격이며, 생선을 먹고 나면 손끝에 남는 연탄향이 오래도록 남아 다음 방문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것이 단순한 고집이 아닌 '철학'으로 불리는 이유다. 더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맛을 위해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 바로 이 정신이 50년 노포를 50년 노포답게 만드는 힘이다.
🐠 대표 메뉴 — 임연수부터 삼치까지
호남집의 대표 메뉴는 생선구이이며, 특히 임연수구이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임연수 외에도 고등어, 갈치, 꽁치 등 계절 생선도 준비돼 있다.
임연수는 한국에서도 마니아층이 두터운 생선이다. 살이 부드럽고 담백하면서도 구웠을 때 껍질이 얇고 바삭하게 익는다.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도 한 점 맛보면 바로 그 매력에 빠지는 생선이기도 하다.
메뉴는 구이, 볶음, 찌개로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오징어볶음과 김치찌개 같은 사이드 메뉴도 인기다.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메뉴만 남긴 것 역시 이 집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진짜 맛집일수록 메뉴판이 복잡하지 않다는 말이 여기서 통한다.
🌏 외국인 친구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이유
서울을 처음 찾은 외국인 친구에게 어디서 밥을 먹을지 고민이라면, 주저 없이 호남집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한국 서민 밥상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화려한 한정식이나 트렌디한 퓨전 요리도 좋지만, 한국인이 수십 년간 매일 먹어온 '진짜 집밥' 같은 맛을 느끼려면 이런 노포가 제격이다. 넉넉한 반찬, 뜨끈한 된장국, 그리고 갓 구운 생선 한 마리면 충분하다.
둘째, 시장 문화라는 살아있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노포는 단순히 오래된 가게가 아니다. 벽에는 손때 묻은 메뉴판이 걸려 있고, 반찬은 수십 년 전 그 맛을 그대로 낸다. 사장 혼자 혹은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손님과의 관계도 가깝다. 이런 분위기는 어느 관광지에서도 살 수 없는 진짜 서울의 모습이다.
셋째, 가격이 합리적이다. 동대문시장 일대는 가격은 부담 없고 반찬은 넉넉하며 음식은 빠르게 나온다.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에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가성비'다.
📍 방문 정보
- 위치: 서울 종로구 종로40가길 5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도보 10분)
- 영업시간: 오전 6:00 ~ 오후 9:00
- 정기휴무: 없음 (연중무휴)
- 추천 메뉴: 임연수구이, 삼치구이, 오징어볶음
- 가격대: 생선구이 8,000원~
✍️ 마치며 - 50년이라는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매일 아침 연탄불을 피우고, 생선을 손질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의 반복이 쌓여 만들어진 시간이다. 호남집이 지금도 동대문 골목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맛을 찾는다면, 연기 자욱한 그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 보길 권한다.









